초의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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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안문화원 댓글 0건 조회 466회 작성일 18-06-05 17:55본문
초의(艸衣)는 조선 정조 10년(1786년) 4월 5일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흥성 장(張)씨이며 이름은 의순(意恂)이다.
초의(艸衣)라는 호는 출가 후 스승 완호(玩虎) 윤우(倫佑)로 부터 받은 것이며, 일지암(一枝庵)은 재호(齎號)이다.
15세때 나주시 남평에 있는 운흥사로 출가하였으며 19세때 해남 대둔사(大芚寺)에서 완호(玩虎)스님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탱화를 잘그려서 당대 오도자(吳道者)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한국 최고의 근대화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초의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서예는 천의무봉(天衣無縫) 바로 그것이었다.
강진에 유배중이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웠으며 완당 김정희(金正喜)등 당대의 석학들과 종파를 초월하여 교유하였다.
39세때 대흥사 뒷편에 일지암(一枝庵)을 중건하고 이곳에서 초의선(艸衣禪),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專)등을 저술했다.
55세(1840년)에 헌종(憲宗)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草衣大宗師)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58세(1843년)에 고향을 찾아 집은 다 헐물어가지고 잡초만 무성한 부모의 무덤을 보며 눈물로 시를 지었는데 귀고향(歸故鄕)이라는 시이다.
1866년(고종 3년) 7월 2일 입적하시니 세수(世數) 81세요 법랍(法臘)은 6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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